
찬실은 나이 40이 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 영화 일만을 열심히 좇았으나 허망하게 그만둘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이 계속 추구하던 가치가 정말 가치있는 건가 라고 자문하게 된다. 흰색 반바지와 흰생 난닝구를 입고 돌아다니는 중국 배우를 자칭하는 희안한 귀신의 도움을 받으며, 생각을 깊게 하며 내적으로 성장한다.
영화 초반부에 찬실이의 상황이 확 안좋아지는 걸 빼고는 찬실을 둘러싼 환경은 영화 내도록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가 변화해가는 과정은 어쩌면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우선,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상깊게 반응해주지 않는 무던한 세상을 원망하다가, 서서히 순응해가는 과정이다. 일이 잘 안되니까 연애라도 해야지 하고 새롭게 관계를 진전시키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아 절망에 빠진다. 그런데 그게 과연 절망일까?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려고 절망에 빠뜨리는 것일까?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찬실이는 계속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은 본인 뜻과는 관계없이 마음대로 변화하는데, 마음과 생각은 정체되어 있다가 세상 따라 함께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일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영화이다.” 라는 대전제의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찬실은 혼란스러워한다.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라는 귀신의 말에 뇌가 풀가동된다. “영화 말고도 중요한 가치가 많아서 만약 영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썸남의 이야기에 흔들린다. 이윽고 “좋아한다는 것”의 무게를 살짝 덜어서, 그냥 마음가는 대로 시나리오를 쓴다.
영화 제목을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평점을 확인해보니 9.15점으로 아주 높은 편에 속했다. 40대 여주인공의, 극적인 성과없는 내면 성숙에 집중하는 이야기이다.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 취향에 맞겠다 싶었는데, 제목부터가 남자들에게는 전혀 매력없이 다가오는 제목이니 애초에 남자들이 많이 안봤겠지 싶었다. 와우. 남녀 비율을 보니 성격은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윤희에게>(2019)보다 여성 비율이 1%P 높은 75%이라니, 대단한 걸.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았는데, 윤여정이 쓴 문구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를 보는데 눈물이 왈가닥 쏟아졌다. 마스크에서 짠내가 조금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