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SEOUL] 2. La Piscine 후기

시작하기 전 용어 정리

  •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 설명 생략 ㅎ
  • 42 SEOUL :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개발자 양성 교육 프로그램. 본래 프랑스의 에콜 42라는 코딩 학교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번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에서도 진행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사교육기관(?)이라고 한다.
  • 라 피신(La Piscine)(이하 피신): 42 SEOUL 본 교육 과정을 들어오기 위한 평가 단계. 4주 간의 집중교육기간을 거쳐 합격생들을 최종 선발한다.
  • 클러스터 : 교육 장소. 특히 맥 컴퓨터들이 있는 곳. 공식 문서에는 코딩스튜디오 라는 명칭과 혼용하고 있음.
  • 오아시스 : 물을 마실 수 있는 작은 공간. 텀블러 등을 보관할 수 있고, 정수기가 있다. 클러스터에는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다.
  • 피시너 : 라 피신 단계에 있는 교육생들.
  • 카뎃 : 본 교육과정에 있는 교육생들.
  • 스태프 : 42 SEOUL을 운영하는 분들.
  • 홀짝제 : 코로나로 인해 하루는 클러스터에 출석하고 하루는 원격 접속을 하는 제도. 1그룹은 월, 수, 토. 2그룹은 화, 목, 일. 금요일은 공통 EXAM.
  • 과카몰레 : 아파치 재단의 원격 프로그램. 이하 VNC.

무엇을 기대했나?

크게 기대한 바는 없다. 막연히 기존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방식일 것 같은 느낌만 있었다. 그 교육 방식이 너무 급진적이거나, 혹은 기존에 진행하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그건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가가 나에게는 중요했다. 경우에 따라서 동기 부여가 되는 비용이나 직접적인 교육을 해줄 수 있는 교재와 선생님이 더 효과적인 교육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접 들어가서 체험하기 전 까지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고, 아무것도 결정지을 수 없었다.

맥을 활용한다는 것, 홀짝제로 운영된다는 것 외에는 유용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좀 더 자세하게 검색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42 SEOUL에서는 슬랙이라는 메신저를 사용하고, 슬랙 그룹은 피신이 시작하기 며칠 전에 생성되었다. 인싸들은 벌써부터 활발하게 움직였다. 홀짝제로 운영된다는 소식에 다들 클러스터에 출석하지 않는 날에 모이기 위한 스터디를 만들고 가입했다. 나는 정보가 없었으므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혼돈의 상태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전반적인 생활

친한 형이 서울에서 지냈다가 계약 기간 남은 방을 놔둔 채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부산에서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신림에 있는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찾아보아 알게된 사실은, 신림은 노량진과 함께 수험생이 많이 지내는 곳이었다. 그래서 방값이 다른 서울 지역에 비해서는 좀 저렴한 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지낸 방은 2호선 신림역에서 장군봉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1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오르막길이라서 천천히 걸어야 땀이 나지 않았다.)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쯤이었다. 많이 자면 7시간, 적게 자면 5시간. 이 정도로 왔다갔다 했었던 것 같다. 첫날 밤은 긴장되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정말 피곤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나도 열심히 달려야 했다. 아침에 신림에서 출발하여 선릉을 거쳐 개포까지 가야 했는데, 지옥출근길 시간을 피하기 위해 6:30 ~ 7:00 즈음 집에서 나섰다. 그러고 나서 클러스터에서 밤 10시 반쯤 출발하면, 집에 도착하고 씻고 잘준비하면 이미 밤 12시가 되어있다. 서울에 지내는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연락할 시간도 없었다. (핑계일 수도 있다.)

어떤 분들은 정말 멋지게 시간을 활용했다. 홀짝제로 인하여 클러스터 방문일이 제한되는데, 아무래도 원격 접속보다는 클러스터에서 공부하는 환경이 더 쾌적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클러스터에 더 오래 있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원격 접속일에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고, 클러스터 접속일 전날 밤 늦게 개포동에 와서, 12시 땡 했을 때부터 클러스터 입장하여 그 날 밤을 새고, 낮에도 계속 공부하여 밤 늦게 막차 타고 비로소 퇴근하는 분들. 존경의 뜻을 전한다. 나는 체력적으로 밤을 새지 못한다. 정말 리스펙이다.

식사 이야기를 하자. 부산에서는 안그래도 모아둔 돈을 자취하면서 까먹고 있었다. 아무리 식비를 아껴가며 최대한 가난하게 살려고 하지만, 나가는 돈은 꾸준하고 통장 잔고는 점점 비기 마련이다. 절약의 패턴이 몸에 배여있었지만, 42 SEOUL 할 때에는 그 패턴을 버리리라 결심했다. 42 SEOUL 에서는 출석만 제대로 채운다면 지원금을 준다! 게다가 이왕 서울 올라온 거, 맛있는 거 제대로 먹자 싶었다. 맛있는 음식은 고된 삶에 위로가 되니. 많은 사람들이 스터디에 참여하듯이, 나도 첫날부터 옆사람이 속해 있던 스터디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마포 합정에서 모이는 스터디였다. 그리고 우리 스터디는 모일 때마다 합정의 각 맛집을 섭렵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스터디의 앵갤 지수는 매번 신기록을 갱신한다고도 했다.

집에서 직접 요리할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사는 사람 없는 집에 들어가서 산 거라, 살림살이가 충분하지 않았다. 음식을 담을 만한 용기는 라면 하나 끓일 수 있는 작은 냄비가 전부였다. 삶을 계란을 먹겠다 하고 가까운 할인마트에서 계란 한 판을 사오고, 아침으로 먹으려고 쿠팡에서 냉동 볶음밥을 왕창 샀지만, 김치 같은 반찬이 없으니 금방 물렸다. 신림역 앞 24시간 버거킹이 있는데, 차라리 거기서 식사 해결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간편함이 최고시다. 볶음밥은 절반 정도 남은 것 같은데, 모든 과정을 마친 지금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다. 고민이긴 뭐가 고민이야. 전부 쓰레기통행이지 ㅋㅋ

옷 이야기를 하자. (생활이니까 의식주 이야기를 단번에!) 나는 부산에서 올라온 몸이기 때문에 어떤 옷을 얼마나 챙겨갈지 선택해야 했다. 다행인 건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며칠 동안 타인에게 보일 옷이 좀 비슷하고 반복된다 하더라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다. 그래서 딱 반바지 세 개, 셔츠 두 개, 맨투맨 하나, 반팔 많이, 속옷 많이 챙겼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서울의 7월은 아주 덥다는 인식이었다. 뉴스를 봐도 꼭 부산에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서울은 찜통 더위였다. 위쪽 지방이 먼저 더위지고 그 다음 아래쪽 지방이 더워지는 게 국룰이라, 7월은 덥겠지 하고 긴 바지를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비는 잊을 만하면 오고, 바람도 불고 그랬다. 아주 어렸을 때에 비해 여름철 에어컨에 민감해진 나는 항상 가방에 맨투맨과 담요를 들고 다니려 했는데, 꼭 에어컨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날씨가 추워서 잘 활용했었던 것 같다.


교육환경

클러스터는 너무 좋다. 설치된 iMac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2~300 만원 짜리가 보급형 맥이라고 하니까 그정도가 아닐까 싶다. 일단 화면이 짱 커서 좋았다. 무려 27인치! 집으로 돌아와 나의 Full HD 노트북 화면을 보니, 좁은 방에 온갖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상도를 찾아보아 계산해보니 내 노트북 화면을 7.11111… 개 갖다 붙이면 맥 화면이었다. 오..

맥의 속도도 느리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맥을 처음 쓰다보니까 난항이 꽤 많았다. 한영 키부터 시작하여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도 잘 모르겠고, 스페이스나 독을 좀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법도 막 찾아보았다. 본래부터 맥 사용자였다면 훨씬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에서 작업하는 방식은 좀 신기했다. 사용자마다 현재 진행중이었던 작업이나 홈 디렉토리로부터 생성한 각종 폴더 파일들을 한꺼번에 저장하는 스토리지 서버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로그인을 하면 어디에선가 데이터를 받아와서 로그아웃 했던 시점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로그아웃하면 다시 다 저장이 되겠지. 이는 후술할 VNC(과카몰레) 원격 접속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다만 이러한 시스템을 적절하게 유지하려면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피시너들이 할 수 있는 건 로그인과 로그아웃, 그리고 화면 잠금 정도이지, 전원을 끄거나 다시 시작하거나 대기 모드로 들어가게 되면 컴퓨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컴퓨터가 재부팅되면 크롬이 맛이 간다는 제보가 심심찮게 들렸다. 그런 상황일 때엔 어쩔 수 없이 스태프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고, 스태프는 원격으로 맥을 적절하게 리부트 시킨다. 컴퓨터가 재부팅되어도 시스템이 유지가 된다면 참 좋을텐데,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업인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기타 시설도 좋았다. 화장실도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 같았고, 경비아저씨도 자주 순찰을 다녔던 것 같다. 오아시스도 매일 아침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도 청소된다. 24시간 운영되다보니 시설 관리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 것 같은데, 역시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돈이 많은 게 분명하다. 코로나 때문에 휴게시설 관련된 것들을 하나도 이용해보지 못한 것이 좀 가슴아팠다. 클러스터에서 잠을 자면 패널티가 주어지지만, 몰래 쪽잠 자는 분들도 꽤 있었고, 스태프들도 적정 선까지는 눈감아주는 느낌이었다.

건물은 새롬관, 마루관 이렇게 두 개인데, 클러스터가 있는 새롬관만 왔다갔다 했다. (건물 하나만 계속 들락날락 하니, 건물 이름이 언급될 일이 없어서 이름을 전혀 모르다가, 검색해서 찾아봤다.) 하여튼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좀 말썽을 자주 일으켰다. 층수 숫자를 알려주는 칸에 갑자기 --라고 뜨더니 엘리베이터가 아주 천천히 지하까지 갔다가 다시 운행을 재개하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 뜬 상태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마치 지하실로 끌려가는 듯한 기분을 맛볼 수도 있다. 스태프나 경비 직원들도 별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뇌피셜이긴 하지만, -- 라고 뜨는 것은 아마 점검 모드인 듯 하다. 운행 중에 조금이라도 이상수치가 발견되면 즉시 운행을 멈추고 지하로 가서 자가체크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홀짝제의 한계

포스트 코로나, 비포 코로나 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올해 초에 코로나가 터진 이래 생활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특히 어느 한 장소에 모이는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42 SEOUL 도 예외가 아니었다. 라 피신 자체가 두 달이 밀렸고, 드디어 시작하나 싶었더니 홀짝제로 운영한다고 했다. 클러스터 출석일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나는 1그룹에 해당하여, 월, 수, 토에 클러스터 입장이 가능했다. 2그룹은 화, 목, 일에 가능하였다. 모든 피시너들은 1, 2그룹 중 하나에 속했다.

클러스터 입장이 불가능한 날은 원격 접속으로 진행할 수 있다. 입장 가능한 날과 불가능한 날의 경계는 정확히 밤 12시였다. 클러스터 입장이 가능한 날에 원격 접속을 하거나, 원격 접속만 해야 하는 날에 클러스터에 입장한다면 패널티가 주어진다고 했다. 금요일은 시험이 있는 날이었고, 형평성을 위해 시험 외 시간은 모두 원격 접속으로 진행하는 식으로 되었다. 클러스터에는 길다란 책상 양쪽에 맥이 모두 배치되어 있지만, 한 쪽 면에 사람을 앉히고, 한 쪽 면을 원격 컴퓨터용으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클러스터에 방문한 사람이 원격용 맥을 건드릴 일은 없었다.


원격 접속의 늪

일단 원격 접속은 문제가 많았다. 크게 VNC와 SSH 접속법이 있었다. VNC는 화면 공유를 함께 해주는 원격 접속이고, SSH는 해당 컴퓨터에 원격으로 조작가능한 터미널만 띄우는 식의 접속 방법이다.

두 가지 모두 문제가 많았는데, 우선 VNC는 속도가 너무 느려터졌다. 접속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시스템이 아주 불안정했다. 도중에 끊기기 일쑤며, 심지어 잘 쓰고 있다가 다른 원격 접속자가 해당 맥을 가로채어 본의 아니게 관음하게 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맥 로그아웃을 제대로 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로그아웃되지 않는 상황도 빈번했다. 이는 새로 접속할 때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미 접속된 다른 세션을 끊겠냐는 창이 뜨는데, 반은 잘 되고 반은 안 된다. iSCSI 실패 오류가 뜨는 건 예사고 Mount Error 까지 뜨게 되면 맥에서 작업한 모든 데이터를 갈아 엎어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 실제로 나는 한번 갈아 엎었다. 스태프에게 질문을 날리는 슬랙 채널은 아마 8할이 로그아웃 시켜달라, 원격 접속이 안된다 등의 글이다.

SSH는 다소 쾌적한 환경이었긴 하지만, 도중에 아무런 예고 없이 끊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본인의 맥 스토리지와 연동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SSH 로 접속해도 맥에서 작업했던 것들을 볼 수도 없고, SSH에서 작업한 것들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도 없는 것이다. 깃을 이용할 때 ssh-genkey를 활용하는데, SSH는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키를 만들어 시스템에 등록시켜야 할 판이었다. 연동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 이전에 해당 맥에서 작업했던 사람들의 코드를 본의 아니게 훔쳐볼 수도 있다. 타파 방법이 비공식적으로 막 생겨났는데, 해당 맥을 VNC로 접속하여 데이터를 모두 동기화 시킨 뒤, 나와서 SSH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러면 본인이 작업했던 것을 터미널 상에서 그대로 볼 수 있긴 하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일들 모두, 코로나로 인한 원격 접속 시스템 구축이 아주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원격 고난 접속의 행군을 헤쳐나가기 위해 쓴 방법이 있다. 바로 Visual Studio Code 의 Live Share 기능을 활용한 방법이다. 느려터지고 불안정한 VNC에 겨우 접속하여, Integrated Software Management (용어가 정확하지 않음)에서 Visual Studio Code와 Live share 확장 기능을 설치하고, 콜라보레이션 세션을 새롭게 열어 그 링크를 슬랙으로 보내어, 윈도우인 내 컴퓨터에서 그 링크를 연다! 그렇게 되면 나의 로컬 컴퓨터에서 쓰는 것처럼 맥의 vscode를 쓸 수 있다! 터미널 쉐어도 가능!


아쉬운 팀플

홀짝제의 문제는 비단 원격 접속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특성상 개인 과제 뿐만 아니라 팀플도 여럿 있다. 하지만 팀이 형성되는 방식은 그룹과 상관없이 진행된다. 그러니까 월요일 출석가능한 사람과 화요일 출석가능한 사람이 하나의 팀이 될 수도 있다. 팀플 특성상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이야기하고 같이 코딩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데, 이는 홀짝제와 완전히 대치되었다. 본래 출석일이 아닌 사람은 팀장의 출석일에 따라간다. 게다가 팀플 평가일에는 클러스터 출석이 무조건 요구되는데, 본인의 출석일이 아닐 경우에는 잠깐 클러스터에서 평가만 받고 다시 나가야 한다. 집에서 클러스터까지 아주 오랜 시간 통학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합리적이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발발한 이후 제한적이나마 오프라인으로 42를 진행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다. 애초에 팀플 자체가 홀짝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되었으므로, 불협화음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피신 과정이 끝나고 교육생들의 피드백을 구글 설문으로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원격 접속이나 홀짝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항목은 발견할 수 없었다. 잠깐 홀짝제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뉴 노멀이라고, 홀짝제를 계속 유지해야 할 수도 있는데, 기관 입장에서 교육생들에게 관련된 피드백을 제대로 요구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친절함이 컨셉인 시스템

어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네. 클러스터에 최초 방문하여 등록할 때, 어떤 서약서를 적는데, 그 중에는 대충 기밀 누설 금지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메일로 문의했는데, 서약서 내용은 알려드릴 수 없고 “라피신 학습과 관련된 정보“를 제외하여 작성해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오케이. (뭐가 오케이?)


42 SEOUL을 홍보할 때 3無 학습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무교재, 무교수, 무학비라고 한다. 그럼 무엇이 있는가? 42 시스템이 있고, 주위 동료가 있고, 구글 검색이 있다.

자체적인 인트라넷이 있다. 모든 건 여기서 시작한다. 개인 과제를 열람하거나 제출하고, 다른 동료를 평가하고, 다른 동료로부터 평가받으며, 팀플을 시작하고 끝맺으며, 점수와 진도를 확인할 수 있고, 규칙이나 문서를 읽을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인트라넷이라서, 전 세계의 교육생들의 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다. 사실 인트라넷이라는 말은 의미가 퇴색된 듯 하다. 또 뇌피셜 시작.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정말로 클러스터의 맥으로만 접속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외부 인터넷에 전부 공개되어 있다. 계정만 있으면 언제나 어디서든 접속가능하다.

웃긴 건, 이런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처음 접속하여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건 프랑스어로 말하고 영어 자막이 나오는 짤막한 유튜브 링크가 끝이다. 마치 설명 없는 게임처럼,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그 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 더군다나 사람마다 적응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은 주위에 방법을 알려야 하고, 적응이 느린 사람은 적응이 빠른 사람 옆에 붙어서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다. 친절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많이 교류해야 정보가 빠르게 돌고,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에 적응되었다 하더라도, 개인 과제나 팀플 과제로 주어지는 문서도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번역이 일단 거지같아서 영문판 문서를 교차검증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사실 영문 번역도 거지같다. 문제에서 요구하는 조건은 항상 해석의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제출 후 기계에게 채점을 받아봐야 이게 틀린 건지 맞는 건지 알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런 와중에 정말 적응력이 뛰어나 눈에 띄게 앞으로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 꿀팁을 많이 전수받아야 한다.

개인 과제는 재시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팀플 과제는 기회가 딱 한번 뿐이다. 그래서 더 거지같다. 지키라는 걸 다 지켜도, 충분하지 않은 예시와 애매한 조건 때문에 뒷통수를 제대로 맞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절대 자기 자신을 믿지 말라.

불친절한 과제 문서를 보완해줄 수 있는 건, 구글 검색이었다. 기밀 누설 금지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몇 년동안 진행되어 왔던 42 시리즈에 공개되어있지 않은 정보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코드 통째로 공개되어 있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코드를 분석하는 데에도 조금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사실은 아마 스태프나 카뎃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카뎃의 정보를 인트라넷에서 검색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카뎃들이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평가받았는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력은 중요하다.

여하튼 이런 불친절함이 컨셉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이런 불친절함은 프로그래밍이나 코딩 실력을 키우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다. 나는 팀플 중 두 개를 억울하게 빵점 맞았다. 엄밀히 따져서 억울한 것은 아니지만,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킨 걸 다 했는데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트집잡는 기분이었다. 너무 대놓고 절망과 수치심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지원금이었습니다 따단~ 끝까지 열심히 해야지 별 수 있나..

그 외에 의외였던 건, 나는 학장님이나 좀 높으신 분들이 피시너들을 한데 모여놓고 인삿말을 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는 점. 학장님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성취로 따지면 나에게도 나름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다만 이것이 동료 평가에서 오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가르쳐주는 상황이 더 많았고, 다른 이들로부터 가르침을 전수받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정말 두뇌가 뛰어난 사람이 존재하는데, 일단 그런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어떤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 개인적인 성취란, 정직한 시간 투입에서 오는 개인 학습에서 오는데, 나는 이번 기회에 Makefile과 같은 빌드 툴이나 C 컴파일 관련 cli 에 훨씬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

지금껏 뭔가 시스템이나 홀짝제나 원격 접속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사실 나도 굉장히 보람찬 4주였다.

우선 스터디원들. 나는 첫날까지 어떤 스터디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첫 날, 옆자리 사람이 너무 익숙하지 않았나 보다. 나도 익숙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나에게 몇 번 질문을 하셨다. 나는 질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답하려고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쯤이 되었을 때 혹시 식사는 어떻게 하시냐 물어봤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스터디가 있다고 했고,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제안을 받았다. 오케이.

그렇게 마포 합정 스터디에 꼽사리를 끼게 되었는데, 스터디원들 모두 열심히 하는 게 좋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것도 좋았다. 잘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함께 토의를 할 수도 있었고, 성장 잠재력이 뛰어나신 분들도 있어서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마 나만큼 시간 투여를 했다면 나보다 훨씬 잘할 사람들… 그리고 나는 계속 독학만 해왔기 때문에 다른 개발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도중에 한 분이 포기하시긴 했지만, 파이널 테스트 끝까지 함께 했다. 코딩에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나에게 처음 질문해주신 (연결고리가 되어주신) 분은 정말 놀랍도록 성장했다.

스터디원 전부 다 합격을 기원했다. 혹시 내가 합격을 못한다 해도.. 서울 올라와서 제대로 된 뒤풀이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 날은 다들 너무 피곤해서 알코올이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팀플도 다들 열심히 했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전부 다 좋았다. 다른 팀플 보면 열심히 안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여서 좀 불안했는데, 정작 팀플로 만난 분들은 다들 열심히 하는 분이라 나는 복받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열심히 하셔서 나도 더 열심히 할 힘이 난 것 같았다. 아주 보람찬 경험이었다. 모두 합격하고 서울에서 다시 보자고 약속했다. 제발..


결론

보람찼다. 피신 과정 마치고 또 일해야 해서 일 하러 간다.. 쉴 수 없다.. 힘들다.. (빈약한 결론) 결과는 언제 나올지 몰라~

2 thoughts on “[42 SEOUL] 2. La Piscine 후기

  1.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전 3달에 700만원 내고도 똑같이 굉장히 불친절한 과정을 공부했어서 그나마 돈주면서 불친절하면 친절한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물론 경험해보면 또 다르겠죠… 정성들여 작성하신 것 같아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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